선지자와 예언자,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들 가운데 선택하신 사람들이며 그들은 완전한 인간의 특징을 부여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며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어느누구도 그 수를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니싸아장 16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 그대에게 이미 언급한 선지자들이 있고 그대에게 언급하지 아니한 선지자들이 있도다. 》 그들의 임무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인간에게 전하고 인간들로 하여금 유일신 하나님을 믿도록 선교하며 높은 도덕성을 가지도록 선교하며 그들사이에 좋은 관계를 가지도록 이끄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사도인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과 예수, 그리고 마지막 사도이자 선지자인 무함마드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와 선지자들이 아담의 자손으로 창조된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하셨고 그의 사도 무함마드의 혀를 통하여 그러한 사실을 명백히 하셨다. 꾸란의 카흐프장 110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 일러 가로되, “ 실로 나는 너희들과 같은 한 인간이나 계시가 내게 내렸을 뿐이거늘 ”…》

따라서 모든 사도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와 같은 특징과 몸을 가진 인간들이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어떻게 음식을 먹고 시장을 걸어 다니고 그들과 같은 특징과 몸을 가진 사람에게 계시가 내릴까라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러한 놀람과 궁금증을 표현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들의 혀로써 이야기하게끔 하셨다. 이스라장 94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들이 말하길 “ 하나님이 인간을 선지자로 보냈단 말이뇨?》 그래서 하나님께서 요나장 2절에서 대답하셨다. 《 우리(하나님)가 그들 중 한 사람에게 계시를 내리어 백성들에게 경고하도록 한 것이 그들을 놀라게 하였단 말이요? 믿는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 하나님께서 이므란장 79절에서 말씀하셨다. 《 하나님으로부터 그 성서의 지혜와 예언자의 직분을 부여받은 인간이 백성들에게 말하여, “ 하나님 대신 나를 경배하라 ” 하지 아니하고 …》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시할 한 인간을 선택하신 것이며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인간들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장 11절에서 말씀하셨다. 《 이에 답하여 선지자들이 말하였더라. “ 우리는 너희와 같은 인간에 불과하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복가운데 그분의 뜻대로 은혜를 베푸시니라.”》 또한 푸르깐장 20절에서도 말씀하셨다. 《 그대 이전에 우리(하나님)가 보냈던 선지자들도 모두가 음식을 먹고 시장을 걸었으며…》 즉 그들은 음식을 먹고 인간들이 고통받는것에 그들도 고통을 받고 죽음이 그들에게도 오며 그들중 어느 누구도 영생하지 않으며 어느 누구도 어떠한 하나님의 특성중 어느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므란장 144절에서 말씀하셨다.《 무함마드는 한 선지자에 불과하며 그이전 선지자들도 세상을 떠났도다. 만일 그가 죽거나 살해 당한다면 너희는 돌아설것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마지막 사도 무함마드에 대해서 아흐잡장 40절에서 말씀하셨다. 《 무함마드는 너희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며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최후의 예언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들에게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보내셨고 인류에게 그들이 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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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것을 복종하도록 명하셨다. 하나님은 파티르장 24절에서 《 실로 어떠한 백성 중에서도 경고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고, 요나장 47절에서 《 각 움마(공동체)에 각 선지자가 보내어져…》라 말씀하셨다. 또한 뭄타히나장 6절에서는 《 실로 너희를 위한 교훈이 그들안에 있나니…》 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와 사도의 차이  

  실로 선지자들은 충실한 하나님의 종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들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그들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영적인 계시를 내리셨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이전시대와 자기와 동시대의 사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을 부여 받았다. 그래서 선지자는 사도의 추종자이며 그는 사도와 같은 시대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의 선지자 하룬이 하나님의 사도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과 같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지자인 하룬은 하나님의 사도 모세의 추종자이자 조력가 되었으며 사도의 명령과 그의 가르침을 적용하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사도로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계시를 받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성서와 계시문들을 계시하여 인간들에게 알리게 하신다. 따라서 모든 사도는 선지자이지만 모든 선지자는 사도가 아니다. 사도는 바로 하나님의 계시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아 인간에게 전달하는 분이다. 전달자의 일을 맡은 사람이나 예언의 일을 맡은 사람이나 또는 선교의 일을 맡은 어느 인간이나 백성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메신저의 일을 맡은 어느 인간에 대해 말하면 그는 합법적인 용어에 따른 사도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의 전달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우편 배달부 또는 인간으로부터 그와같은 인간의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맡은 전령사라 불리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절대 하나님의 사도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메신저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사도인 무함마드의 메신저들인 왕들과 군주들이 있으며 인간에게 예수의 가르침의 임무를 맡은 예수님의 교우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그분의 계시를 전달받는 일을 맡기며 가브리엘 천사가 성령으로 그에게 계시하는자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사도라느 말이 어느 누구에게도 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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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과 정신  

  하나님이 꾸란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두 번째 삶인 내세에 대한 연구를 다루기 전에 먼저 인간의 삶에 있어 중요한 두 요소인 영혼과 정신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만 하겠다.    

  영혼  

영혼과 정신은 인간의 현세적 삶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며 그 각 요소들의 몇몇 특징들을 아는 것은 사탄이 인간을 유혹하기위해 행동하는 방법들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각요소들의 본질을 아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지식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며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만큼 그것을 자세하고 전반적으로 명백히 해놓으셨기 때문이다. 많은 이슬람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영혼의 본질을 알기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들은 그것에 대한 색, 냄새, 형태 등 어느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에 대한 인식을 하지못해 당황하였다. 우리는 실제로 만질수 있는 물질을 제외하고는 인식할수 없는 물질적 존재이며 보고 인식할 방법이 없는 모든 것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그것을 느끼고 그것의 존재를 믿을 뿐이며 그것은 이상적, 인식적, 느낌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느낌과 인식은 그것들이 이상적, 의미적 세계에 있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마지막 사도인 무함마드에게 영혼에 대해 질문했다. 하지만 무함마드는 그의 정신으로부터 그들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브리엘 천사가 그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장 85절에서 그러한 사실을 말씀하셨다. 《 그들이 영혼에 관하여 그대에게 물으리라. 일러 가로되, “ 영혼은 나의 주님외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며 너희가 아는 것은 미량에 불과하니라.”》

질문은 영혼의 본질에 대한 것이었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며 하나님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혼에 대한 지식중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셨다. 그것은 <있어라>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야씬장 82절에서 말씀하셨다. 《 실로 그분(하나님)께서 무엇에 뜻을 두시고 “ 있어라 ”명령하시면 그대로 되느니라.》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원조를 창조하셔서 그 인간에게 그분의 영혼을 불어넣으셨다고 알려주셨다. 히즈르장 29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 내가 형상을 만들어 그안에 나의 영혼을 불어 넣을 때…》 그리고 샴스장 7-8절에서 《 인간과 그것을 창조한 주님을 두고 맹세하사, 선과 악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도록 하셨나니》 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셨고 아담을 흙과 물로 (진흙)형상화 하셨다. 싸즈다장 7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분(하나님)은 그 분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가장 조화있게 두셨으며 인간을 흙에서 창조하기 시작하셨느니라.》 이것은 최초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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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 시작을 나타낸것이며 그러신 후에 살아있느 완전한 인간을 만드시기 위해 최초 창조물에 선과 느낌과 시각을 가지고있는 그분의 영혼을 불어 넣으셨다. 하나님께서 싸즈다장 9절에서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청각과 시각과 심장을 주셨도다. 그러나 너희는 감사하는 마음이 크지 못하더라》 따라서 인간은 3개의 주요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요소는 바로 영혼과 정신과 물질이다. 그것 모두는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영혼에게는 그것을 나타낼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느낌으로 부터이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혼은 모든 무생물을 느끼고 인식하고 움직임이 있는 살아있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하나님이 어머니의 자궁안에서 난자와 정자의 만남없이 인간을 창조하신 일에서 명확히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정액을 점차적으로 응혈로 변화시키시고 그런후에 4달동안 영혼이 없는 식물이 성장하는 것처럼 응혈을 작은 태아로 성장시키신다. 성장과 형성으로써 인간의 구조가 완성된 후에 하나님의 명령으로 그에게 영혼이 생기게되며 그래서 인간의 태아가 되어 그의 어머니 배속에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이로한 방법으로 모든 인간은 창조되었다.

아담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이 진흙의 작은 물질에 영혼을 불어 넣으셔서 완전한 생명체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으로부터 하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남자의 정액없이 마리아의 자궁으로부터 예수를 창조하셨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성장하였는데 그것은 일반적 인간과는 다른 방법이었다. 하나님께서 이므란장 59절에서 말씀하셨다. 《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그랬듯이 예수에게도 다를바가 없도다. 하나님은 흙으로 그를 빚어 그에게 말씀 하셨다. “ 있어라, 그리하여 그가 있었느니라. ”》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창조에 관한 것을 니싸아장 171절에서 말씀하셨다.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는 주님의 영혼이었느니라. 》 따라서 창조에 있어 형태는 영혼이었으며 하나님은 그러한 무생물을 완전한 인간의 삶으로 변화시키도록 명하신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일반화되지 않은 남자와 여자와의 결합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불어 넣으신 영혼은 아담과 하와와 예수 각자에게 불어 넣으신 것이며 그것은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불어 넣으시는 영혼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흘장 2절에서 말씀하셨다. 《 천사들에게 영혼으로서 그 분이 원하시는 그 분의 선지자들에게 명령을 내리사…》 그 말씀은 모든 창조물에 있어 영혼은 하나라는 것을 명백히 하신것이며 모든 것을 존재케하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인 “ 있어라”이다. 기독교는 창조에 대한 명령을 설명할 때 “ 있어라”를 하나님으로 설명함으로써 갈라져 나간다. 기독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그리스도는 인간의 형상을 한 하나님이며 그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영정함에 환영하기위해 한 일이다.> 또한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실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을 하나님으로 간주하며 그분이 마리아의 자궁에서 9개월동안 인간의 구조를 형성하고 준비하기 위하여 거하셨다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셨다고 여기며, 그분은 인간이 고통받는 것을 고통 받으시고 인간의 조상인 아담이 저질렀던 원죄를 대속하기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금의 기독교 교리이며, 그것은 많은 우상숭배 종교들이 이야기하는 속죄 이론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다른 신이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유일성 신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떠한 것과 같지 않으시며 그분의 속성은 유일하게 그분만이 소유하시며 그분은 신성과 신격을 가지신 한 분이시며 신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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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 누구와도 비유되지 않는 한분이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써 예수를 창조하셨고 그를 그의 사도로 만드셨으며, 경배로써 그 분의 유일성을 선교하도록 하셨고, 그 분의 유일성을 어느 누구와도 비유하지 않도록 하셨다. 아담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죄를 저질렀고 곧 회개하고 용서를 빌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하셨다. 그러한 죄는 하나님이 그의 회개를 받아들이심으로 끝이 난 것이다. 아담의 자손들은 완전한 믿음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왜 그가 저지르지 않은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까?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이시기에 죄를 짓지 않은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죄를 절대 묻지 않으신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따라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    

하나님께서 샴스장 7절에서 《 정신과 그것을 창조한 주님을 두고 맹세하며 》 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 정신은 인간의 원함, 바람, 희망을 나타내는 형태이다. 그것은 진행하는 인식의 특징이며 물질적 신체와 결합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다. 정신은 물질적 신체가 아니며 인식으로부터 정신이 형성되며 그 정신으로서 물질적 신체가 즐거워하며 느끼며 인식하는 것이다. 정신은 영혼의 자취들 중의 하나이며 영혼은 정신에게 그 특징들을 수행하기 위한 힘을 부여했다. 따라서 정신은 영혼과 분리되지않고 그것과 결합하여 하나가 된다. 근본적으로 정신은 영혼이 아니다. 주마르장 42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 죽음에 이른 인간의 정신을 앗아가며 수면의 상태로하여 생명을 앗아가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기한이된 정신을 앗아가며…》 여기서의 죽음은 앗아가는것과 취하는 것이며 보내는 것은 떠나게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정신과 육체사이의 차이점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으며 영혼과 정신사이의 차이점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정신은 완전한 믿음의 본성에서 벗어난다. 즉 원하고 바라는 느낌과 사탄의 팽창에 대한 분쟁에서도 벗어난다. 만일 정신을 제압해버리면 정신으로부터 아담의 자손들에게 위협을 주었던 적이 없게된다. 왜냐하면 정신은 현세만을 원하며현세만을 좋아하고, 육체속에서 물질과 쾌락과 즐거움의 세계에 근접하며 지배와 통치력을 좋아하게되고 통치와 영향력을 위해 다른 것을 이용한다.

만일 정신이 이러한 병적인 상태와 같은 것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영혼에 영향을 주게되며 길을 잃고 길 없는 곳이나 낭떠러지 같은 곳을 달리다가 영혼은 정신과 함께 지도자적 위치에서 떨어지게되고 영혼의 관대한 특징을 잃게되며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슈라장 45절에서 말씀하셨다. 《 실로 손실자들은 부활의 날 그들의 정신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을 상실한자들이라 》 땅위에서 그들의 거만함과 건방짐은 그들의 손실의 이유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푸르깐장 21절에서도 말씀하셨다. 《 그들은 스스로 교만해하고 불손하도다 》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거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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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안카부트장 40절에서 말씀하셨다. 《 이것은 곧 하나님 스스로가 그들을 욕되게 한것인 아니라 그들이 그들 스스로 욕되게 한 것 뿐이라. 》 그래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욕됨으로 인해 고통과 징벌을 받아야만한다. 영혼은 비천한 정신에 따라 관대한 특징이 없어질때까지 점차적으로 타락에 이르게 된다. 영혼은 진실속에 있으며 구귀한 특징속에 있는 것이다. 만일 정신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그분을 경배함으로써 하늘나라 왕국인 천사의 세계와 이상의 세계까지 그의 몸을 고귀하게 한다면 정신에게는 고귀한 인간성과 완전함으로 안락한 위치가 있게 될것이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만족을 얻어 만족스럽고 안정된 정신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파즈르장 27-30절에서 말씀하셨다. 《 그러나 의로운 영혼들에게는 “ 너희 영혼들아, 너희는 완전한 휴식과 기쁨속에 있으리라” 라는 말씀이 있을 것이라 》 현실의 삶에 있어 행위와 행동에 따라 영원한 내세에서 그의 운명과 위치는 일치 될 것이다. 그리고 영혼의 첫 번째 머물게 되는 곳은 장벽의 세계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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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신앙의 기둥  

내세(장벽 - 무덤 - 천국과 지옥 - 판결과 숙명 )  

장벽의 세계

  1 - 장벽의 삶, 죽음으로서 시작되는 것

- 무덤, 축복과 징벌

2 - 나팔소리

부활과 소생 그리고 심판의 날에 소집

3 - 심판의 날

4 - 내세와 안정된 삶

천국, 지옥  

우리가 알고 믿어야하는 이러한 요소들은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식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어떠한 논쟁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내세에서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유일신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믿는 모든 신자들은 그것을 어떠한 의심이나 주저없이 확실하게 믿고 있으며 우리 주 하나님께 내세에서 우리가 승리 할 수 있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장벽의 세계

    1. 장벽의 세계와 영혼의 위치 : 장벽의 세계에 대한 언어, 법률적 정의

* 언어적 정의 : 언어학자들은 장벽이라는 말을 어떤 두 개 사이의 낀 벽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죽은 후 부활까지의 기간으로 부르고 있다. 와씨뜨사전 49페이지에 이와 같이 정의되고 있다.

죽은 사람은 장벽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그것은 지리학자들에게 있어 두 바다 사이에 둘러싸인 땅조각이다 > 또한 압둘라 싸라즈 교수는 그의 책 ‘ 내세들에 대한 믿음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 장벽 그것은 어떤 두 개 사이의 분리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영원한 극단이 없다. 그것은 태양과 그림자 사이 그리고 민물과 바닷물 사이의 분리선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라흐만장 19 -20절에서 말씀하셨다. 《 그분(하나님)께서 두 바다를 자유롭게 흐르게 하고 만나게하되 둘 사이에 장벽을 두니 그들 각자는 침범하지 아니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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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적 정의: 하나님은 성서인 꾸란 무으민장 99-100절에서 장벽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죽음이 그들에게 이를 때 “주여! 저를 다시 돌려보내 주소서. 제가 남겨둔 일에 선행을 행할수 있나이다”라고 말하나 그러나 결코 할수 없나니 그것은 그가 지껄이는 말에 불과하며 그들 앞에는 부활할 그날 까지 장벽이 있을 뿐이라.》 이슬람 법학자들은 장벽이란 용어에 대해 죽음과 부활 사이에 존재하는 기간이라고 말한다. 이븐 까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장벽은 현세와 내세사이에 있으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현세와 내세를 보며, 장벽은 무덤의 고통과 축복이라 불리며 그곳에는 정원과 구덩이가 있게 된다. >

그곳은 의미의 대표적 세계이다. 거기에는 영혼들이 확실하게 나타나며, 영혼은 적절한 형태로서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곳은 모든 것의 예들을 모아놓은 본보기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는 물질적 세계로 그곳에는 모든 물질의 형태와 구조가 나타나며, 우리가 이 현세애서 죽음으로 장벽으로 세계로 옮겨가면 모든 물질의 형태와 구조는 사라지고 우리 시야와 우리의 물질적 삶에 숨어 있었던 진실이 나타나며, 진실은 우리의 생각과 이 물질적 삶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과 의미적 예의 형태로써 드러나게 된다.

이븐 까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장벽의 세계는 모든 것의 예들을 모아놓은 느낌과 의미와 형태적인 세계이다 >

하나님께서는 무으민장 100절의 말씀으로서 그분의 말씀을 명확히 하셨다. 《 그들 앞에는 부활할 그 날까지 장벽이 있을 뿐이라 》 실로 인간은 죽음으로 현세와의 관계가 끊어지며 그의 물질적 몸은 그의 최초의 물질로 돌아가기 위해 땅 속의 구멍으로 옮겨진다. 이러한 구멍을 무덤이라 부른다. 영혼이 몸과 분리되는 순간부터 다른 삶이 시작되는 것이며 죽음의 순간부터 부활의 시간까지의 이 기간을 장벽의 세계라고 부른다. 이것은 무덤에 있는 시간 부터 부활의 시간까지의 기간이다. 그 시간에는 이븐 까임이 언급했듯이 고통과 축복이 있다. 인간은 그 장벽의 세계에서 현세에서 그가 가장 좋아한 사람과 함께 있게 되는데 정직한 자들과 함께한 자는 그들과 함께모여 장벽의 기간을 함께 보내며, 불신자들을 좋아한 사람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의 은총을 거부하는 자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도께서 말씀하셨다 : < 인간은 그가 좋아한 사람과 함께 모인다 > 그리고 또한 말씀하시길 : < 친구의 종교에 속한 사람은 너희들중 누군가가 친구로 대하게 됨을 보개 될 것이다. > 친구를 믿는 것은 필요로 하는 의무적인 일이다. 친구를 불신하는 자는 꾸란을 불신하는 자이며 친구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자이며 하나님께 거짓말 하는자는 불신자이며 불신자는 고통과 징벌을 얻게 될 뿐이다.  

영혼의 거처  

피조물인 영혼을 잃어버리면 모든 그의 감각과 움직임이 멈추게 되어 딱딱한 조각으로 되어버린다. 영혼은 물질적 신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현세에서 그것과 분리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음에 이르렀을 때 영혼은 신체와 분리되어 장벽의 세계에 거하게 된다. 즉 운명이 정해진 시간이 되었을 때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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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나가서 장벽의 세계에서 그와 유사한 것들과 함께 있게 된다. 그 장벽의 세계에는 영혼들이 적절한 감각적 형태로 나타나며 죽음 이후에 그와 유사한 것들을 만난다.

쌀리흐 마리는 말했다 : < 영혼들은 죽었을 때 서로 만난다. 그래서 죽은 영혼들은 몸으로부터 벗어난 영혼에게 말할 것이다. 너가 거주했던 곳은 어떠했으며 좋은 몸속에서 있었느냐 아니면 사악한 몸속에 있었느냐고 >

이븐 까임은 싸이드 빈 마십의 말을 다음과 같이 옮기고 있다 : < 사람이 죽으면 그의 아버지는 마치 숨어 있던 사람을 만나듯이 그를 만난다 > 또한 아비드 빈 아마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 사람이 죽으면 영혼들은 그를 만나 그에게 여행가들이 질문하듯이 그에게 많은 것을 물어본다. 즉 누구는 무엇을 했고 누구는 무엇을 했는가를 물어본다. 그러면 그가 그는 죽었고 그들에게 오지 않았느냐고 말하면 그들은 그는 그의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갔다라고 말한다. >

영혼들의 만남과 그들의 상호방문은 이슬람 학자들이 전하는 쑨나에 확실히 나와 있다. 이븐 까임이 말하기를 : < 살아있는 자의 영혼과 죽은자의 영혼이 만나는 것은 진실한 꿈의 일종이다. 꿈은 사람에게 있어 인지되는 종류이며 그것은 잠자는 사람의 영혼이 가족, 친척, 친구 등의 죽은 영혼들과 만나는 것이다. >

영혼들은 듣고 본다. 그러한 사실은 사도께서 명확히 밝히셨다. 사도께서 무덤을 지나갈 때 그분은 무덤들에게 인사를 하곤하셨다. 부카리와 무슬림의 하디스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 하나님의 종의 무덤이 있다면 사도는 그의 교우들과 그들을 부리는 소리를 듣기위해 그에게로 간다. 두 천사가 그 종의 무덤에게로와 그를 앉히고서 그에게 말한다 : 너는 무함마드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느냐? 그러면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그가 하나님의 종이며 그분의 사도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도는 말씀하기를 나는 너희 자리가 지옥인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너의 자리를 천국의 자리로 바꾸어 주실 것이다 > 하디쓰의 이 말씀은 살아있는 자들의 기도에 유용함을 줄 것이다. 아담의 자손이 죽었을 때 단 3가지를 제외하고는 그의 행위는 끊긴다. 그 3가지는 바로 자선과 학식과 자식이다.

장벽의 세계에서 영혼들의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1. 이전에 행한 나쁜 행위 때문에 고통과 징벌로서 예정된 고통받는 영혼들  

2. 현세에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선함을 행한 결과로써 행복감에 젖어있은 자유롭고 축복받은 영혼들

    죽 음  

  하나님은 꾸란의 안카부트장 57절에서 말씀하셨다. 《 모든 인간은 죽느니라. 그리하여 우리(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느니라 》 죽음은 인간이 내세로 들어가는 첫 순간이다. 그리고 죽음은 현세의 마지막 순간이며 죽음으로써 현세상이 끝나는 것이다. 실로 하나님은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모든 피조물은 죽음에 대해 피할길이 없으며 어떠한 피조물도 영생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라흐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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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7절에서 말씀하셨다. 《 대지 위의 모든 것은 멸망하되 그대 주님은 영원하사 권능과 영광으로 충만하시나니》

죽음은 사실이며 죽음으로써 신실한 신자는 현세의 고통과 고난으로부터 휴식이 있으며 그의 원래의 땅인 하나님이 믿는 종들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천국으로 되돌아감으로 행복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은 푸실라트장 30절에서 말씀하셨다. 《 그러나 “ 우리의 주님은 하나님이시라 ”고 말하며 옳은 길에 있는 이들을 위해서는 천사들이 그들에게 강림하여 “ 두려워 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라. 너희에게 약속된 천국의 복음을 받으리라.”》

인간에게 죽음의 시간이 다가왔을 때 인간의 사회적 삶은 물질과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현세의 삶의 모든 부와 지위와의 관계는 끊어진다. 평가, 가족, 명성, 돈, 소유물들이 죽음에 이른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며 그에 대한 대우는 그의 행위에 따라 있게 된다. 따라서 현세에서 행한 일들이 그의 지위와 위치를 정해주며, 그 일들을 토대로 하여 그에 대한 대우가 결정된다. 인간의 물질적 신체로부터 영혼을 취하는 일을 맡은 천사들은 죽음에 이르게 될 사람에게 가서 하나님의 저울에 따라 그의 위치를 보게 된다. 그가 진정한 신자였다면 천사들은 그를 가장 좋은 형태로 데리고와 그에게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는 가장 좋은 형태와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가진 천사들을 보게되며 그들이 인간을 위해 일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이바다 빈 싸미트가 전한 하디쓰에서도 그것과 일치한다 : <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 만나기를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만나기를 원하며 하나님 만나기를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를 만나기 싫어 하신다. 그러자 아이샤가 말하기를, 실로 우리는 죽음을 싫어하나이다. 그러자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그러한 것이 아니다. 즉 죽음을 싫어하는 것이 하나님을 만나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자가 죽음에 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만족과 관대하심에 기뻐하는 것이지 죽음앞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와 만나기를 좋아하신다. 실로 불신자가 죽음에 임하게 될 때 그는 하나님의 벌과 고통을 겪게되는데 그것은 죽음앞에서 그에게 강요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싫어하는 자는 하나님도 그와의 만남을 싫어하신다. 만일 죽는 사람이 신자라면 그에게는 천국에 그의 자리가 있을 것이며 불신자는 지옥에 그의 자리가 있게 된다. 죽음으로써 신자는 현세의 고난과 고통으로부터 편안함을 얻게되고 원래의 땅인 천국으로 돌아감으로 행복과 안락을 얻게 된다.

그리고 실로 비참한 사람들은 불신자들이다. 아비 까타다가 하디쓰에서 전하길 : < 사도께서 장레식을 지나시다가 말씀하셨다. 편히 쉬소서, 구원받으소서, 그러자 그들이 말하길, 사도시여 편히 쉬는것과 구원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신자인 하나님의 종은 현세의 고통으로 괴로움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비로 쉬게되며 죄를 진자는 국가와 종들과 나무가 그를 구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께서 명확히 밝히신 진실이며 그것은 여지없이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이 죽고 난후에 그것을 명백히 보게될 것이다.

  무덤 : 무덤은 지옥의 구멍들 중의 어느 한 구멍에 있든지 천국의 정원의 한 정원에 있게 된다. 천국의 무덤에서는 천국의 백성들의 축복과 같은 축복이 있으며 지옥의 무덤에는 지옥의 백성들의 고통이 있다. 압둘라 빈 우마르가 사도의 말씀을 하디쓰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 < 너희들중의 어느 누가 죽으면 그의 자리는 아침, 저녁으로 드러나는데 그가 실로 천국의 백성이라면 천국의 백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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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러나며, 지옥의 백성이라면 그에게 이 자리가 부활의 날 하나님이 너를 부활시킬 때까지 너의 자리이다. 라고 말할 것이다 >

무덤에서 인간은 현세에서 그가 믿었던 신앙에 대해 질문 받는다. 하디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 <무슬림이 무덤에서 질문 받으면, 그는 하나님 이외에는 신이없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현세나 내세에서 확실한 말로 믿는 자들을 확증하셨다. >(부카리가 전함)

  무덤과 그곳에서 축복과 고통

  무덤은 내세의 여러 장소 중 첫 번째 머물곳이다. 하디쓰에서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 < 오스만이 무덤에 멈추어서서 그의 턱수염까지 젖도록 울었다. 그래서 그에게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고 울지 말라, 이분이 누구인데 너가 우느뇨? 라는 말이 들렸다. 그래서 그가 말하길, 사도님이 말씀하시길 무덤은 내세의 첫 머물곳입니다. 그가 무덤으로부터 구조된다면 그후에는 행운을 얻게 될것이고 그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보다 더 심해질 것입니다… >

꾸란과 사도의 말씀으로부터 무덤의 고통과 무덤의 축복을 확증하셨다. 꾸란 가피르장 46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 그들은 아침 저녁으로 불로 이끌려 가며 심판의 날이 이르면 … 》그리고 하디쓰에서 바라 빈 아집이 말했다 : <우리는 사도와 함께 안사르 중의 한 사람의 장례식에 갔다. 무덤파기를 다 마쳤을 때, 사도께서는 앉으셨고 우리도 사도님 주위에 빙 둘러 모여 앉았다. 그분의 손에는 땅을 긁고 있는 우두가 있었다. 그분은 머리를 드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하나님께 무덤의 고통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을 두, 세차례 기원하라. 그러신후에 말씀하시길 믿는 종이 이 세상으로부터 끝나고 내세를 맞이 했다면 하늘로부터 태양 같이 밝은 얼굴을 한 천사들이 그에게로 내려온다. 그리고 천사들은 천국으로부터 장막과 천국의 직물을 가지고 와서 그가 보이는 범위에 앉는다. 그런후에 죽음의 왕이 와서 그의 머리에 앉아서 말한다. 안전한 정신이여! 너는 하나님의 용서와 만족으로 빠져나가라. 그러면 그 안전한 정신은 물가죽 자루의 물방울이 흘러내리 듯이 흘러서 빠져나가고 천사들은 그러한 장막과 직물 속에서 안전한 정신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안전한 정신은 육체로 부터 빠져나가는데 그것은 지구상에서 발견되는 가장좋은 미풍과 같다. 그리고 천사들은 이 영혼을 가지고 올라가며 천사들은 천사들이 모인곳을 통과하지 않으며 단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뿐이다. 이 좋은 영혼은 무엇인가? 누구의 아들 누구이며 이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들 중 가장 좋은 이름을 가진 영혼입니다. 천사들은 영혼을 세상의 하늘까지 가서 끝날 때까지 올라간후 하나님께 영광을 애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승리를 수여하신다. 그리곤 모든 하늘 가운데서 이 영혼에 적절한 하늘에 살게 하시며 일곱 번째 하늘에 도달하게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종의 책을 천상에서 기록하고 그종을 땅으로 다시 데려가라. 실로 나는 인간들을 땅으로부터 창조하여 땅에 그들을 데려갔느니라. 땅으로부터 나는 다른 때에 그들을 꺼내리라. 하나님은 두 천사를 그에게 보내 인간에게 앉게하셨다. 그리고 두 천사는 그에게 말했다 : 너의 주님은 누구입니까? 그래서 그는 나의 주님은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두 천사는 다시 그에게 묻기를 너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그래서 그는 나의 종교는 이슬람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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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자 두 천사는 너희들에게 보낸 사람은 누구이냐? 라고 묻자 그는 하나님의 사도입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두 천사는 너의 지식은 무엇이냐?라고 하자 그는 나는 하나님의 책을 읽었고 그 책을 믿었으며 신뢰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나의 종은 진실하다라고 하는 외침이 하늘로부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천국에 그를 위해 잠자리를 마련했고 그에게 천국의 옷을 입혔으며 그를 위해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그의 영혼에게 그러한 일이 있었다.>

이맘 이븐 까임은 무덤의 징벌에 대한 이야기를 많고도 확실한 것들로 충분한 답변을 하셨으며 그것들은 주로 부카리와 무슬림의 하디쓰와 쑨나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들이다.

무덤의 징벌은 확실한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에 대한 징벌을 완화시키고 그 징벌로부터 보호해 주시도록 요청한다. 실로 무덤은 지옥의 구덩이 가운데 한 구덩이 이거나 천국의 정원들 중의 한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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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 : 그것은 하나님의 종교이며 하나님의 이름인 쌀람으로부터 나온 말이다. 이슬람은 한 인간에 관계되지도 한 민족에 관계되지도 않는다. 이슬람은 단지 아랍인만의 종교가 아니며 모든 인류의 종교이다.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며 단지 하나님의 신자중의 하나이며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선교를 위임받았을 뿐이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하나님의 신자로서 하나님을 선교한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까라장 132- 13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아브라함은 그의 자손들에게 그의 종교를 따르라 했으며, 야곱도 그랬더라. 실로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신앙을 선택하여 주셨나니 무슬림으로써 그안에서 생애를 마칠지어다. 야곱이 죽음에 이를 때 너희가 지켜보고 있었나니 야곱이 그의 손자들에게 이르길; 내 다음에 너희는 무엇을 경배할 것인가? 라고 말하니, 그들이 대답하길,“당신의 신이며 당신 선지자인 아브라함과 이스마일과 이삭의 신인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그분에게만 순종하나이다”라고 하였더라.》

많은 무지한 사람들이나 모르는 것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은 이슬람을 무함마드와 연관시켜 무함마드종교나 아랍인의 종교라고 말들한다.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정정하기위해 나는 여기에서 다음을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이슬람은 피조물에 관계된 것이 아니며 피조물은 오히려 이슬람에 관계되는 것이며 이슬람이 사람들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이슬람을 비교할 뿐이다. 따라서 이슬람은 하나님의 종교이며 이슬람의 법은 아담시대부터 부활의 날까지 그분의 모든 창조물들을 위한 것이다. 이슬람의 꾸란은 보존된 것이며 이슬람의 신앙은 하나님의 유일성의 신앙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슬람 신앙이 왜곡되고 변경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셨다. 또한 이슬람에서는 성직자들이 없으며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는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신자의 형제이다. 이슬람에서는 학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교수들이나 교사들이다. 그들은 선지자들로부터 학식을 전수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종에 대한 이 세상의 장점은 마치 다른 별들에 대한 달의 장점과 같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종교의 근본을 변화시키거나 변경할 권리가 없으며 공공의 복지나 통치자나 왕의 관심에 따라서도 절대 변경될 수 없다. 이슬람에서의 모델은 바로 꾸란과 하나님의 사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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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소리  

천사들 가운데는 이스라필이 있는데 그 천사는 하나님 가까이 있는 천사들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은 그 천사에게 나팔을 부는 임무를 맡기셨고, 하나님은 이스라필에게 3번 나팔을 불도록 명하셨다.

  - 첫 번째의 공포의 나팔 -  

언어상으로 공포라는 말은 피난과 구조의 의미가있다. 즉 공포를 준다는 것은 피난시켜 주고 구조한다는 것이다. 사도께서 안사르들에게 말씀하셨다. 〈실로 너희들은 공포를 많게하라. 그리고 욕망을 적게하라.> 그리고 나팔에 대해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필에게 파괴와 멸망을 알려주는 최초의 나팔을 불 것을 명하셨다고 전해진다. 그때에는 땅이 흔들리며 그 위에 있는 사람들은 혼동과 무질서에 있게되며 심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의 징조의 나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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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르: 그들은 메디나 주민들로써 이슬람을 전파하는데 하나님의 사도를 도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메카 주민들 중 초기 무슬림 이주자 모두를 환영하였다. 하나님은 이슬람을 그들의 조력과 이주자들의 충심으로 강화시키셨다. 안사르들은 마치 하나님의 사도인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도운 사람들과 같은 이들 이라고 꾸란의 사프장 14절에서 말씀하셨다.《마리아의 아들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길에서 누가 나를 돕겠느뇨?”라고 했을때“저희가 하나님의 길에서 돕는 자가 되겠습니다.”라고 제자들은 대답했느니라.》그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 두 번째 죽음의 나팔 -  

  언어상으로 시든다는 말은 죽음이다. 천둥번개는 강력한 천둥속에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이다. 하늘에서는 대지위에 있는 것들에 천둥번개와 징벌의 강한 질풍을 가져와 모든 것의 의식을 잃게 한다. 하나님께서 주마르장 68절에서 말씀하셨다. 《 그때 하늘에 있는 것과 대지위에 있는 모든 것이 의식을 잃어 시들어 지되…》 즉 죽게되는 것이다.

이 죽음의 나팔은 하나님의 허락으로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을 죽이는 시간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필 천사에게 나팔 불 것은 명하셔, 땅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의식을 잃게 되고 위대하신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나님은 주마르장 68절에서 말씀하셨다.《나팔이 울려 퍼지리라. 그때 하늘에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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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대지위에 있는 모든 것이 의식을 잃어 시들어 지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들은 제외라. 그 후 또 다른 나팔이 울려 퍼지니 보라! 그때 그들은 서서 지켜보리라》이러한 말씀은 나팔이 두 번 울려퍼진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창조물중 어느 하나도 남지 않고 모든 것이 죽는 날에 울려퍼지며 그 나팔로써 현세의 삶은 끝나고 땅은 땅이 아닌 것으로 대체된다.  

  - 세 번째 나팔-

그것은 부활의 나팔이다. 부활은 땅으로부터 소생하며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들을 결산과 보상의 날을 위해 모이게하는 날이다. 하나님께서는 주마르장 68절에서 말씀하셨다. 《 나팔이 울려 퍼지리라. 그때 그들은 서서 지켜보리라. 》세번째는 부활의 날, 즉 온우주의 주인이신 주님을 위해 인간들이 일어나는 날 즉, 소생의 날에 울려퍼지는 나팔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사들 가운데 한 천사에게 나팔을 불게 하는 임무를 맡기셨는데 그 천사가 바로 이스라필 천사이다. 첫 번째 나팔소리에 모든 것은 죽고 멸망하며 온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하나님 께서는 그러한 것에 대해 까프장 41절에서 말씀하셨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있을 천사의 부름에 귀를 기울이라.》또한 까프장 42절에서 말씀하셨다.《그들이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될 그날이 바로 부활의 날이 되리라.》

그럼으로써 인간들과 모든 창조물들은 땅으로부터 부활하며 하나님은 그분의 능력으로써 그들이 살아있었던 때 처럼 그들의 모습을 재생시키신다. 그것은 바로 인간들을 처음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시며, 그 분은 모든 것에 대해 아시며 모든 것에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다. 그래서 인간들은 마치 풀과 식물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땅으로부터 성장하여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서 똑바로 선 채 계산을 기다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로움장 25절에서 말씀하셨다.《 또한 하늘과 대지가 그분 명령에 의해 존재함과 그분께서 너희를 지상으로부터 부르실 때 너희가 재현됨도 그분 예증의 하나이라.》  

  부활 또는 소생  

  그것은 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죽은것들이 다시한번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언어에 있어 < 바아싸>는 보내다는 의미이며, < 잠으로부터 보내다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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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다와 일어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 죽은 자를 부활시키다 >는 죽은자들을 다시 생명을 있게 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핫즈장 5절에서 말씀하셨다. 《 실로 너희가 부활에 관하여 의심하고 있다면 태초의 창조를 보라. 실로 우리(하나님)가 너희를 흙에서 창조하였느니라… 》또한 루끄만 장 28절에서도 《 너희를 창조하고 또 부활시키는 것은 한 생명을 창조하고 부활시키는 정도와 같아서… 》라고 말씀하셨고 야씬장 77-83절에서도 말씀하셨다. 《 인간은 우리(하나님)가 그를 정액으로부터 창조하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보라! 그러나 그는 아직도 역행하고 있도다. 그리고 그(인간)는 우리(하나님)에게 비유하며 그가 창조된 것은 잊어버리고 말하길, “ 부패하여 버린 이 뼈에 누가 생명을 주느뇨?” 라고 하더라. 일러 가로되, 그분(하나님)께서 태초에 그들을 창조한 생명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니라. 실로 그분(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심을 알고 계시니라. “ 푸른 나무에서 너희를 위해 불을 창조한 것도 같을 것이라. 보라! 그때 너희는 그것으로 불을 밝히느니라.

“하늘과 대지를 창조하신 그분(하나님)께서 그것들과 유사한 것을 창조할수 없단 말이뇨? 그렇지 아니함이라.” 실로 그분(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시며 아시는 분이시라. 실로 그분(하나님)께서 무엇에 뜻을 두시고 “ 있어라 ”명령하시면 그대로 되느니라. 모든 만물을 주관하신 그분(하나님)께 영광이 있으소서. 그 모든 것은 그분에게로 귀의하느니라.》

이것은 거부하고 부인하는 자에게 하나님으로 부터의 설명이며, 소생과 부활은 죽음후에 다시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로 하나님은 재생에 대한 그분의 능력을 명백히 설명하셨다.  

소 집  

  그것은 모이는 것이다. 언어상으로는 인간들이 소집되는 것이며 인간들이 모이는 것이다. 소집의 날에 대해 타크위르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 《 야생동물들이 떼지어 모이고》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죽고난후에 그들을 소집하시는데 마이다장 99절에서 말씀하셨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너희는 그분에게로 모이게 되느니라 》 또한 이므란장 158절에서 《 만일 너희가 죽었거나 살해당했다면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소집됨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죽은후에 우리를 소생시키셔서 우리를 모이게 하시며 우리는 심판의 날 다시 모이게 된다. 그날 모든 권리를 가진자는 자신의 권리를 취할것이며, 모든 피조물들은 그가 행한것에 배상을 받게되는데 너의 주님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 배상을 하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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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판 계산의 날  

    모든 피조물들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의 소집이 있게되면 그들 모두는 모이게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해 그들을 계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장 41절에서 말씀하셨다. 《 주여! 저에게 관용을 베풀어 주소서. 저의 부모와 믿음이 있는 자에게도 심판(계산)이 있는 날에 관용을 베풀어 주소서. 》 또한 사드장 53절에서도 말씀하셨다.

《 그와같이 심판의 날을 위해 너희에게 약속된 것이라 》 또한 가피르장 27절에서 말씀하셨다. 《 이에 모세가 말하였더라 ; “ 실로 나는 나의 주님이며 너희 주님이신 하나님께 계산하는 그날을 믿지 아니한 모든 거만한 자들로부터 보호하여 달라 구원하니라 》 이것은 심판의 날이라 불리는 날이며 그날은 계산이 있으며, 사람들은 돈이나 지위나 권력이 없이 맨발로 벌거벗고 있게 된다. 각자는 그의 행위에 따라 계산되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계산하신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한 사람은 그의 선함에 따라 배상을 받게되고 나쁜 일을 행한자는 그의 나쁜 일에 따라 벌을 받게된다. 그날은 권리의 날로써 권리를 가진 모든 사람은 감소나 손실이 없이 그의 권리를 취하며 권리들은 빠짐없이 그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그날에 천국의 백성들에게 상위등급이 결정되며 지옥의 백성들에게 하위등급이 결정된다. 그래서 천국의 백성들은 그들의 믿음, 충실성, 그리고 복종에 따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들의 천국으로 가게된다. 하나님께서는 타우바장 72절에서 말씀하셨다. 《 하나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아래로 강이 흐르는 천국을 약속하사 그곳에서 영생할 것이며 에덴의 천국에는 아름다운 주거지가 있으며…》 그리고 지옥의 백성들은 그들의 불신과 믿음의 거부의 결과로 벌을 받기위해 지옥으로 내려간다. 하나님께서는 카흐프장 102절에서 말씀하셨다. 《 실로 우리(하나님)는 불신자들의 주거지로써 지옥을 마련했느니라.》 또한 니싸아장 140절에서 말씀하셨다. 《 실로 하나님께서는 위선자들과 불신자들을 지옥으로 부르시니라.》

천국과 지옥은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으로써 통제되는 피조물들이며 그곳안에서는 하나님의 의지없이는 어떤것도 존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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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과 지옥의 모습  

  천국의 모습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믿고 그분의 유일성을 신뢰하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과 그분의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따르는 자들과 하나님 한 분만을 경배하는 자들과 하나님께 대한 충실한 경배의 의미를 아는 자들과 하나님을 마음속에서나 공개적으로 경외하는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것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그분의 성서인 꾸란 이므란장 133절에서 준비하신 것을 명백히 하셨다. 《 서둘러 너희 주님께 회개하라. 천국은 하늘과 땅처럼 넓으나 이는 정의에 사는 백성을 위해 준비된 것이니라. 》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처럼 넓은 천국을 준비하셨다고 명백히 밝히신 후 천국의 모습과 천국의 아름다움과 황홀함, 그리고 천국에 축복으로 가득채워 준비해 놓으신 것을 밝히셨다. 알부카리와 무슬림의 하디쓰 사히흐에서 사도 무함마드의 말씀을 전하길, < 하나님께서 말씀이 있었으니, 나는 나의 의로운 종들을 위해 어느 누구도 보지 아니하고 어느 누구도 들어보지 아니하였으며 인간의 마음에 느껴보지도 못한 것을 준비하였느니라.> 아부 후라이라가 말하길 : < 그러므로 너희가 원하는대로 읽으라> 《 아무도 모를 것은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이니 그들을 기쁘게 할 숨겨진 것이니라 》(싸즈다장 17절)

또한 아부 후라이라가 사도의 말씀을 전하길, <하나님께서 천국을 창조하셨을 때 가브리엘 천사에게 그곳으로 보내며 말씀하시길, 가서 그곳을 보아라. 그래서 가브리엘은 가서 그곳을 보았고 하나님께 말하였다. 당신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사 어느 누구도 그곳에 들어가보지 아니하고는 그것에 관하여 들을수 없나이다. 그런후에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종교적 교훈으로 에워싸시고 가브리엘 천사에게 그곳으로 보내며 말씀하시길, 가서 그곳을 보아라. 그래서 가브리엘은 가서 그곳을 보았고 하나님께 전하였다.당신의 영광을 두고 맹세하사, 저는 이곳에 들어갈 자가 아무도 없을까 두렵나이다. > 즉 하나님께서는 천국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에 대해 조건을 달으셨으며 그 조건에 합당한 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본성을 가지고 숭배와 경배로써 하나님의 유일성을 믿으며, 종교적 교훈을 행하도록 만드신 길을 따르는 자들로 인간성을 실현한 자이다. 따라서 정신은 삶에 있어 항상 옳바른 길로 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의 본성과 올바름으로 부터 벗어난 정신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제한에 속박되고 구속됨을 어려워하고 참을 수 없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신은 어떠한 구속이나 제한없는 자유가 있기를 좋아하며 욕망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며 다른사람에게 영향을 강요하거나 통치하기를 좋아하며, 법이나 체제를 따르는 것을 싫어한다. 이러한 삶은 단순한 동물적 삶이다. 왜냐하면 동물은 숲에서 완전히 자유로우며 단지 그 보다 힘이 강한자를 제외하곤 누구도 그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는다. 동물은 두려운 자를 만났을 때 그가 그로부터 안전하다면 그는 그의 자유에 대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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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하나님께서 제한과 법과 규정을 정하셔서 동물적 삶과 구별지우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의 자유를 제한하셨고 개인의 자유를 다른 사람들의 자유가 끝났을 때 시작하게 하셨고 다른 사람들의 자유가 시작될 때 개인의 자유를 끝나게 하셨다. 따라서 이러한 삶이 올바른 규칙에 속박되어서 행복과 고귀함으로써 인간의 완전성에 도달한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들게 준비해놓으신 천국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무슬림은 사도님께서 전하시고 이다바 빈 싸므트가 옮긴 것을 그의 하디쓰에서 전하고 있다. < 실로 천국에는 100여개의 단계가 있으며 각 두 단계사이에 있는 것은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것과 같다. 파라다이스는 가장 높은 단계이며 그것위에는 옥좌가 있고 이곳으로부터 4개의 천국의 강이 발원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물으신다면 너희들은 그 분께 파라다이스를 요청하라 > 그리고 그는 아흐마드와 아싸마 빈 자이드가 사도님께로부터 전해듣고 옮긴 말씀을 그의 하디쓰에서 전하고 있다. < 천국에 준비할것이 없는지요? 실로 천국은 어떤 위험도 없으며, 빛이 빛나며, 향기로운 식물이 향기를 뿜으며, 고귀한 성과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과 잘 익은 열매들이 있으며 아름답고 훌륭한 부인이 있고 많은 옷들과 영원한 거주지인 평화로운 집, 그리고 과일과 야채, 그리고 좋고 높은 곳에서의 축복이 있다. 그러자 그들이 말하길, 사도님이여! 우리는 열심히 준비하겠나이다. 그러자 사도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와끼야장 10-34절에서 말씀하셨다. 《 또한 앞서는 자가 될것이라. 너희는 앞서는 자에 대하여 아느뇨? 이들은 하나님 가까이 있어 축복의 천국에서 기거하도다. 그곳에는 옛 선조들도 있으나 후세의 사람들은 소수더라. 그들은 금으로 장식된 금좌에 앉아 서로가 서로에게 얼굴을 마주보며 기대니 영원히 사는 소년들이 그들 주위를 돌며 술잔과 주전자와 깨끗한 물 그리고 가득찬 잔들로 봉사하도다. 그것으로 그들은 두통을 앓지도 그리고 취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그들은 취향에 따라 과일을 선택하고 그들이 원하는 고기를 즐기며 눈이 크고 아름다운 배우자가 있으매 잘 보호된 진주와도 같도다. 이것들이 그들이 행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 그들은 그곳에서 무익하고 욕된 말들을 듣지 아니하며 “ 단지 평안하소서, 평안하소서 ”라는 말만 듣도다. 우편의 사하바가 되리니 너희는 우편의 사하바에 대하여 아느뇨? 그들은 가시가 없는 시드라 나무가운데 있을 것이며 송이송이 열매맺힌 딸하 나무가운데 있을 것이니 그늘이 길게 펼쳐져 있고 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풍성한 과일이 있되 계절에 제한 받지 않는 것들이라. 높은 곳에 옥좌가 있도다. 》

천국에서 행복과 축복은 남녀가 동등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과 권리와 의무에 있어 남녀가 동등하며 어떠한 차이나 구별도 없음을 명확히 하셨다. 또한 내세에서 보답과 징벌도 마찬가지로 남녀가 동등하다. 천국에서는 여자를 위한 것이 곧 남자를 위한것이며 남자를 위한 것이 곧 여자를 위한 것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정하심과 자비로우심으로 남성과 여성을 서로 일치하게 하셨다.

이러한 천국에 대한 묘사와 천국의 백성들에 대한 묘사가 명확하게 있었는데 누가 의심과 의혹을 가질 것인가? 실로 그것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의 말씀이며 그분은 가장 진실된 말씀을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시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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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과 지옥의 백성의 묘사    

지옥은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은 지옥을 하나님의 존재를 ㄹ거부하고 하나님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부정하는 불신자들을 위한 거처로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실을 라흐만장 43-44절에서 말씀하셨다. 《 이것이 바로 죄인들이 거역한 지옥이며, 들끓은 뜨거운 물속에서 그들은 방황하도다!》 또한 사파트장 68절에서는 《 그들은 타오르는 불지옥으로 향하니라 》라고 말씀하셨고 무잠밀장 12-13절에서는 《 우리(하나님)에게는 그들을 묶을 족쇠와 그들을 태울 불이 있으며 질식시킬 음식과 고통스러운 벌이 있나니》 또한 히즈르장 43-44절에서 《 실로 지옥은 그들 모두를 위한 약속된 곳으로 그곳에는 일곱 개의 문이 있으며 그것은 그들 죄인들에 배당된 각각의 문이라 》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지옥을 묘사하시고 독특하게 지옥의 크기를 까프장 30절에서 묘사하셨다. 《 어느날 우리(하나님)가 “만원인가?”라고 지옥에 물으니, “아직 더하여 올 자가 있나이까?”라고 말하더라.》

지옥에 던져진 자들은 무엇이든지 간에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배고픈 자요 악의 피를 마시는 자이며 하나님께 거만한 자들이다. 사도께서는 지옥에 있는 백성들의 가장 작은 징벌에 대해 묘사하신 말씀을 부카리와 무슬림이 그둘의 하디쓰에서 나으만 빈 바쉬르가 전한 말을 전하고 있다. < 실로 지옥의 백성들에게 가장작은 징벌은 발바닥사이의 움푹패인곳에 횃불을 놓아 마치 솥의 불룩한 곳이 끓는 것처럼 그의 뇌를 끓게 만드는 것이다.>

이맘 무슬림은 아비 후라이라가 전한 사도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다. < 아담의 자손들이 지옥에서 맞게되는 불은 지옥의 불 70가지 부분 중의 한 부분이다. 그들이 말하길, 맹세코 지옥은 충분하나이다. 그러자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지옥은 69개의 부분을 초과하며 그 뜨겁기는 모두가 같다 > 또한 무슬림이 전하길 < 실로 우리가 사도님곁에 있을 때 우리는 한 소리를 들었다. 그러자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너희들은 이것이 무엇인지 아느냐?라고 하셔서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이것은 하나님께서 70개의 가을전에 지옥으로부터 보내신 돌이다. 따라서 지금 밑바닥에 도착했다.>

타르미지는 사도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아비 아마마가 전한 말을 옮기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장 16-17절에서 말씀하시길, 《 그 안에서 피가 섞인 곪은 물을 마시니라.》하셨다. 사도께서 말씀하시길, 거기에 가까이 하는 자 하나님께 모욕을 주게된다. 그곳을 가까이 한다면 그분은 그의 얼굴을 뜨겁게 끓어오르게 하시고 머리가죽은 그곳에 빠진다. 그리고 그것을 마신다면 내장이 끊어져 뒤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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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명  

  하나님이 선과 악을 구별하시며 운명을 결정하신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모든 무슬림들이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실로 그분의 원함없이 어떠한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것도 그분의 의지를 벗어날 수 없다.

정명이란 영원한 하나님의 주관적인 지식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과 일어날 모든 것에 대해 그분만이 알고 계시는 지식을 가르킨다. 그래서 어떠한 사람도 운명과 운명지워진 것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지식에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들을 창조하고 죽고 부활의 날까지 인간에게 어떤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판단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작든, 크든, 비밀이든 공개적이든 간에 인간에게 일어날 모든 것을 기록하셨다. 그분에게는 쓰여진 채 보관된 책이 있으며 그것은 그분의 원함이나 의지없이는 수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쓰여진 모든 것이나 판에 기록되어 보존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전지전능하심에 따라 일어나고 발생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며 땅과 하늘에서 일어날 것과 일어난 것이 그분에게 숨기워지지 않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자세하게 그러한 것들을 알고 계시는 분이시다. 정명은 이러한 운명의 진행이자 운명의 발생이다. 따라서 이러한 결정된 운명의 정명을 믿는 것은 필수적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기둥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정명을 부인하는 자와 정명에 대해 말을 바꾸어 공정하지 않게 거짓말하는자는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시지 않으며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도 받아들이시지 않으며 그러한 자들은 믿는자들 가운데로부터 나가게 하셔서 천국을 금지하시고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기시게 하신다. 숙명과 운명는 현세의 인간에게 동시에 선택되고 진행되는 것이다 일의 진행은 그가 행위하지 않아도 일어나며 일의 선택은 자신의 의지와 이성과 모든 행위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즉 정명과 운명은 인간으로 부터 일어나거나 인간에게 일어나는 것이며 그것은 의지로 부터나 의지가 아닌 것으로 부터 발생되는 것이다.

의지가 아닌 일에 대해 말하면 그것은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이며 인간의 의지없이 그에게 발생하고 일어나는 것이다. 인간은 단지 그의 존재가 물질적 신체적 피조물임에 따라서 작거나 또는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 존재는 그의 형태가 인간에게 원하지도 않고 선택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바꾸거나 교체시킬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신의 의지와 능력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의존재가 크든 작든 또는 길든 짧든간에 그것을 생각하지 않으신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그의 처음 성장하는 곳인 자궁을 선택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의 선택이나 의지없이 수행되며 그의 생을 통해 그의 의지와 벗어난 몇몇 일들이 그에게 이야기해준다. 마치 그것은 안전한 길에서 갑자기 죽거나 아무 원인도 없는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모든 것이 다 이성이나 의지에 따라 일어나지 않으며 그러한 것은 인간이 책임질 일도 아니다. 이러한 어떠한 것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강제적이며 선택적이 아니며 예상된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에 대한 은총으로써 인내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에게 보상과 보답을 허락하셨다. 생각과 이성으로서 조절하는 행위와 사건에 대해 말하면 그것은 선택의 분야이며 강요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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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를 계산하시는 선택적 행위는 행위의 종류와 형태에 따라 벌을 받거나 보상을 받는다. 우리는 삶에 있어 많은 예를 보게된다. 먼저 우리앞에 여러 음식과 과일들이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고 바라는 것을 선택한다. 또한 우리앞에는 많은 방법과 여러 길이 있어 이성은 그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여 만족에 이르는 것을 강요나 의무없이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를 계산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공정하심을 알게되는데, 하나님께서는 먼저 안내와 교육과 충고와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신후 또한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것을 허락하신후 우리를 올바름과 타락함으로 판단하심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하고 영광스런 행위를 하며 좋은 행위를 하는 자들에게 보답을 하시고 강재나 강요없이 의지와 의도로써 타락한 자들과 불복종하는자들에게 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질잘장 7-8절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판결애 있어 명백하고 명확하게 그리고 그분의 경고와 바람을 말씀하셨다. 《미아의 선행이라도 실천한 자는 그것이 복이됨을 볼 것이며 미아의 악행이라도 저지른 자는 그것이 악이 됨을 알리라. 》

인간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조금의 보탬이나 뺌없이 보답과 징벌을 받게된다. 따라서 행위에 있어 최선을 다한자와 행위를 주관하시는 분께 존경하는 자는 보답이 그리고 행위에 있어 타락하고 행위를 주관하시는 분께 불복종하는 자는 징벌이 있게된다. 따라서 어떻게 보답을 받고, 받지 않는 자가 동등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행위에 선택권을 주셨고 그 선택에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지성의 완전한 힘으로 그행위를 하게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을 위한 의지와 이성을 주셔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행위를 결정하고 결심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의 자극과 동기를 부여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인간이 복종하고 그분의 명령에 따를 것을 원하셨고 인간이 선과 옳은 것을 행하기를 원하셔서 인간들에게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성서들과 계시문들을 보내셔서 가르치시고 이끌으시며 그분의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위반하는 것을 경고하셨다. 그러신후 충실한 순종자에게는 보답을 하셔서 내세에 천국과 은혜를 주셨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는자와 불복종하는자들에게 징벌을 내리셨다. 그의 완전한 의지에 따라 불복종을 저지르고 악을 행하는자는 그가 행한 것을 인식하는 이성을 가진자이다. 이성을 가지지 않은 자로 말하면 그는 미친자나 신체적 결함의 짐을 진자로 의식이 돌아올 때 까지 잠자는 자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선과 악을 똑같이 행하라고 강요하셨다고 생가하는 자는 선택이나 의지도 없이 살아가는 자이며 올바름과 진실로부터 벗어난 자이다. 그는 헛된 것을 믿으며 생각하는 자이다. 그리고 당신을 어떠한 일에 대해 강요하고 그 행위에 대해 징벌을 하는 것은 틀리고 잘못된 일이다. 하나님은 어떠한 행위에 대해 올바르시고 공정하신 분이시며 반드시 그 행위에 대해 인간을 평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싼장 3절에서 말씀하셨다. 《우리(하나님)는 길을 제시하여 주었으되 인간이 감사하고 불신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라.》

이슬람 신학자들은 이성을 잃은 사람과 신체적 결함이 지워져 하나님의 가르침을 잃어버린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계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실히 하였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을 취하고 해야할 일이 하나님으로 부터 내려졌다면 그것은 최상의 동물들인 완전한 지성을 가진자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동물들은 지성이 모자라서 그러한 일을 감당할 수 없다.

하나님의 공정하심과 자비로우심으로 부터 부활의 날 죄를 저지르지 않은 자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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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으신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자신에 대해 그리고 그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성을 채워주셨고 인간 이외에는 가르쳐주지 않으셨던 진실과 올바른 길을 인간에게 가르쳐 주셨다. 따라서 선을 행한자는 안전하게되고 구원받으며 죄를 저지른 자는 벌을 받게되고 손실을 입게된다. 하나님께서는 질잘장 7-8절에서 말씀하셨다.《미아의 선행이라도 실천한 자는 그것이 복이 됨을 볼 것이며 미아의 악행이라도 저지른 자는 그것이 악이 됨을 알리라.》

우리가 믿을 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이 아니고서는 땅과 하늘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진실이며 진정하고 올바른 믿음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의 자유와 선택하는 믿음과 상치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은 창조주이시며 그분의 창조와 의지와 능력과 지식으로 부터 벗어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지와 능력으로써 창조된 것이다. 그분은 실로 창조하고 존재하게 하시는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것을 그분의 지혜로써 만드셨고 우주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으로서 자유로운 삶이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모자라진다면 우리의 한정된 지성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지도 낳지도 않으시며 그분과 대적할자 하나도 없으신 유일신 하나님을 믿으며, 정명과 그분의 선과 악에 대한 판별을 믿으며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의 사도와 선지자들을 믿으며 특히 마지막 선지자이자 사도이신 하나님의 종 무함마드를 믿으며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법대로 살게되기를 기원드린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을 모든 믿음으로써 믿으며 다른것과 비유되지 않으신 당신의 유일성을 믿으며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드린다.